프롤로그) 어느 날 문득, 마음이 나를 불렀다
나는 꽤 오랫동안 감정을 잘 다룬다고 믿었다.
속상해도 그럴 수 있다고 넘겼고, 억울해도 이해하려 애썼다.
사람이니까 다들 그렇지, 하고 고개를 끄덕였고, 내 마음이 다친 건 잠시 어깨를 토닥이는 걸로 충분하다고 여겼다.
나는 상담사였고, 엄마였고, 아내였고, 어른이었으니까.
그래서 더더욱, 감정 앞에서 당황하지 않으려고 했다.
내가 흔들리면 안 되는 줄 알았고, 내 감정은 내가 알아서 다독이는 것이 맞는 줄 알았다.
그렇게 마음의 껍질을 단단히 씌운 채, 누군가를 위로하고, 누군가를 살피고, 누군가의 아픔을 어루만졌다.
그런데 어느 날,
정말 별일 아닌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무심한 말 한마디, 생각 없이 지나친 표정, 혹은 창문 너머 햇살 한 줌 앞에서 갑자기 마음이 덜컥 무너졌다.
처음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왜 이런 감정이 나를 휘감는지, 왜 이토록 서러운지.
그 순간 알았다.
나는 ‘내가 뭘 느끼고 사는지’ 잘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감정이란 늘 나를 지나가긴 했지만,
나는 그것을 “느낀다”기보다 “해석한다”에 가까웠다.
느껴지는 대로 두지 못하고, 분석하고 조절하고 정리했다.
‘지금 화난 게 맞나? 왜 이렇게 속상하지? 내가 예민한가?’
그 물음표 속에서 진짜 감정은 조용히 웅크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렇게,
'나도 나를 몰랐던 날들'을 돌아보는 기록이다.
소소한 일상의 순간들,
가족과의 작은 다툼, 사소한 실망, 마음이 복잡했던 날들 속에서
내 감정은 말을 걸고 있었고, 나는 이제야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 책에는 거창한 이야기가 없다.
대신, 프라이팬을 닦다 멈춰 선 순간,
밥상머리의 침묵을 마주한 저녁,
‘잘 지내?’라는 말에 숨이 막혔던 하루처럼
평범하고 조용하지만 분명 존재했던 감정의 기록들이 있다.
그 조각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도, 독자도
“아, 나도 이런 적 있었어.”
“맞아, 이 감정...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알아.”
하고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내가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조금씩 나와 가까워지는 여정이다.
그리고 부디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당신 자신과 조금 더 가까워지기를 바란다.
감정은 가끔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은, 우리가 몰랐던 진짜 나를 가장 잘 알고 있다.
이제는 그 마음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이 책이, 그 첫걸음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