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조직 분위기가 참 무겁다”는 말을 듣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외부에서 보기에 그 조직은 성과도 내고 있고, 구성원도 성실해 보인다. 팀장이 업무를 방해하는 사람도 아니고, 사내 정치가 노골적인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왜 그 조직은 무거운가?
내가 현장에서 만난 수많은 조직의 사례들을 되짚어 보면, 그 분위기의 근원에는 공통적으로 ‘도전 앞에 찬물을 끼얹는 한 사람’이 있다. 단 한 명이어도, 그는 집단 전체의 리듬을 교란하고 에너지를 소진시킨다. 그의 한마디, 한 표정, 한 번의 비꼼이 모두를 주저앉힌다.
1. “그거 예전에 누구도 하려다가 접었잖아.”
회사의 과거 실패를 들춰 현재를 무력화하는 사람
A기업의 마케팅팀에는 새로운 브랜드 캠페인을 시도하려는 신입이 있었다. 그는 수많은 자료를 조사하고, 타 기업의 사례까지 분석하며 열정적으로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그러나 회의 자리에서 중간 관리자였던 B씨가 말했다.
“그거 비슷한 거 예전에 C차장도 하려다가 접었잖아. 우리 조직은 안 맞아. 애써봐야 허탈하지.”
그 말 한마디에 신입의 눈빛이 흐려졌고, 다른 구성원들도 조심스럽게 말을 아끼기 시작했다. 결국 아이디어는 ‘일단 보류’되었고, 신입은 그 뒤로 한동안 회의에서 말이 없어졌다.
이런 회의주의적 발언은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니다. 이는 ‘조직 기억’을 왜곡하여 현재의 시도마저 무의미하게 만들고, 구성원의 실험정신을 꺾는다. 조직심리학자 크리스 아지리스(Argyris)는 이를 “방어적 루틴(defensive routines)”이라 지적하며, 조직 내 진정한 학습을 차단하는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2. “윗선이 좋아할 만한 일은 아니야.”
사적 친분과 눈치로 공적 기여를 누르는 사람
B기업의 전략기획팀에는 사내 정치에 능한 C차장이 있었다. 그는 팀장과의 사적인 관계를 잘 관리하며 자신을 철저히 ‘신뢰받는 사람’으로 브랜딩했다. 하지만 정작 프로젝트에서 새로운 시도가 논의되면 “이건 윗선이 좋아할 만한 안건은 아니야.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자”며 빠르게 분위기를 잠재웠다.
그는 직접 반대하는 법은 없었다. 대신 윗선과의 코드, 리스크 회피, 관성 유지 등을 이유로 팀원들의 기획을 점잖게 무시했고, 때로는 “그런 아이디어는 D주임이 또... 피곤하게 구네”라는 말을 슬쩍 흘려 다른 사람의 손가락질을 유도했다.
이런 사람은 조직 내 '정서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을 해친다. 하버드대의 에이미 에드먼슨(Amy Edmondson)은 “팀원들이 자신의 의견을 거리낌 없이 표현할 수 있는 문화는 학습과 혁신의 필수조건”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이들은 그 안전한 공간을 사적 친분과 정치적 계산으로 점유해 버린다.
3. “해보고 싶으면, 알아서 다 해봐요.”
참여하지 않으며 책임도 지지 않는, 소극적 저항자
어느 IT 스타트업에서는 내부 인사팀이 ‘사내 복지 개선’ 프로젝트를 시도했다. 회의에 참석한 한 실무자가 말했다. “좋은 취지긴 한데, 그거 하려면 데이터도 있어야 하고, 설문도 돌려야 하고, 팀장님들 허락도 받아야 할 텐데... 그걸 누가 다 하죠?”
그 말은 ‘그걸 누가 다 하냐’가 아니라 ‘나는 안 할 거다’라는 선언이었다.
이런 구성원은 표면적으로는 반대를 하지 않지만, 내면의 저항을 적극적인 무관심으로 표현한다. 책임지기 싫어 선을 긋고, 누군가 시도하려 하면 “너는 왜 일을 복잡하게 만드냐”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조직행동이론에서는 이를 '회피 기반의 자기보호 전략'이라 부른다. 자신의 안정된 역할을 유지하기 위해 변화 자체를 부담스럽게 느끼고, 어떤 시도든 ‘내 일이 아니다’는 태도로 분리해낸다. 문제는, 이들은 회의에 꼭 참여하며 '존재감'을 유지한다는 점이다. 무언의 냉소가 회의실에 무겁게 깔린다.
🔑 리더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 1. 가능성을 죽이는 말은 조직 차원에서 가시화하라
"해봤자 안 돼"는 단순한 의견이 아니다. 이는 시도 자체를 봉쇄하는 '심리적 사보타주'다. 리더는 이러한 언행이 반복된다면 조용히 회의 후 면담을 통해 "이런 방식의 반응이 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계신가요?"라는 피드백을 전달할 필요가 있다. 조직은 안전하지만 무관심하지 않은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사보타주 [프랑스어]sabotage 명사 노동 쟁의 행위의 하나. 겉으로는 일을 하지만 의도적으로 일을 게을리함으로써 사용자에게 손해를 주는 방법이다.)
✅ 2. 관계 자산이 아니라 실질 기여로 평가하라
사적 관계로 조직 내 입지를 다지는 문화를 허용하면 구성원들은 일보다 눈치를 우선하게 된다. 리더는 ‘누가 팀장과 가깝냐’가 아니라 ‘누가 가치 있는 기여를 했는가’를 기준으로 인정과 보상을 해야 한다. 이것이 조직의 ‘공정성 지각’을 회복하는 길이다.
✅ 3. 리스크가 있는 시도를 보호하라
실패한 시도가 구성원에게 낙인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시도는 결과보다 앞선 용기다. 리더는 "실패해도 괜찮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배웠는가?"를 물어야 한다. ‘학습하는 조직’이란 그런 것이다.
마치며
조직은 사람의 집합이지만, 그 안에는 '정신적 분위기'가 존재한다. 한 사람의 냉소, 한 사람의 침묵, 한 사람의 무관심이 팀 전체를 중력처럼 끌어내릴 수 있다. 나는 조직 컨설팅 현장에서 수없이 보아왔다. 훌륭한 전략이 구성원 한 명의 회의주의 앞에 멈춰버리는 장면을.
리더는 냉소를 견디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직면하고 다시 말하게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우리는 계속 시도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직, 성장 중이니까."
참고문헌 및 이론적 배경
- Edmondson, A. (1999). “Psychological Safety and Learning Behavior in Work Teams.” Administrative Science Quarterly.
- Schein, E. H. (2010). Organizational Culture and Leadership. Jossey-Bass.
- Argyris, C. (1991). “Teaching Smart People How to Learn.” Harvard Business Review.
- Kegan, R. & Lahey, L.L. (2001). How the Way We Talk Can Change the Way We Work. Jossey-B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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